키메라 작업 노트. 2023
꽃의 머리를 꺾는다. 잎을 뜯는다. 조각난 꽃잎을 집어든다. 잇고 꿰맨다. 뚫고 박는다. 비릿한 풀내음이 난다. 낮이 밤이 되면, 모르는 무언가가 피어난다. 그는 나를 응시하고, 나도 그를 응시한다. 그의 초상을 찍는다.
낮이 밤이 되는 동안, 마녀나 이단, 괴물로 불렸던 자들에 관해 떠올린다. 그들은 어슴푸레한 신음을 흘린다.  어쩌면 나는 일종의 헌화를 하는 걸까. 소설 데미안의 어떤 구절을 떠올린다. 선한 신에게 경배하듯 악한 신에게도 경배해야 한다는 그 말을.
각기 이름을 가진 꽃들은 서로가 뒤섞여 이름 모를 존재가 된다. 이름을 잃자 그는 이름 없는 무엇이 되었다. 그에게서 나를 본다. 또한 당신의 모습을 본다. 
어떤 순간엔 초상화로 봐 주기를. 어쩌면 거울처럼 당신의 모습을 봐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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