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화원> (23.08.17. - 08.23.) 전시 서문.
잡종을 위한 헌화
글: 김우주
 그리스로마에서 묘사되는 키메라의 모습은 이러하다.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통, 꼬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생명체다. 입으로는 뜨거운 불을 내뿜는 이 괴물은 재앙을 몰고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각난 꽃잎을 집어든다. 잇고 꿰맨다. 뚫고 박”아 만들어낸 양준식의 키메라 역시 우리의 번영을 이룩할지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지는 어 느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키메라>는 형태적으로 아름다움과 기괴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여백 없이 사진 가득히 들어찬 거대한 식물은 전시장에 걸려 당장이라도 관람객을 집어삼킬 듯 하다. 두 종류에서 네 종류까지 다양한 식물의 조각들이 합쳐져 있 으며 어떤 형태는 붉은 실로 목을 맨 채 마치 교수형을 당한 듯한 모양새다. 이 식물의 형태는 기존과 다른 이종의 식 물일까. 각기 다른 식물의 형태를 물려받아 태어난 변종일까. 또는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새롭게 창작된 하이브리드 로 보아야 할까. 양준식의 <키메라>는 “나를 응시하고, 나도 그를 응시한다. 그의 초상을 찍”는 행위를 거쳐 사진 속에 “이름 모를 존재”로 존재한다.
 거대하게 인화된 잡종의 꽃 형태는 결과적으로 잡종화雜種化되면서 기존의 흐름을 거부하고 원래 존재하던 것들 의 의미를 전복시킨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반드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던 창작에서 기성품을 더해 레디메이드가 탄 생하였고, TV와 인터넷 등 미디어 매체가 예술과 혼합되면서 미디어아트라는 분야가 시작되었다. 잡종은 역사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만들거나 이끄는 동력이 되어 왔다. 근현대엔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는 명제가 무의미해지고 다원화가 도래하며 모든 것이 혼재된 ‘멜팅팟’, 혼종의 세계로 뻗어나간다. <키메라>에서 보이는 잡종 식물은 우리에 게 무엇이 순종이고 무엇이 잡종이냐는 물음을 던진다. 양준식의 <키메라>는 전시공간이라는 현실의 공간에 위치하 며 헤테로토피아와 같이 기존 의미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권력을 전도시키는 세계가 된다.
 하지만 양준식이 그리는 식물은 다른 식물과 위계를 설정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 우위성을 논한 다거나 순종과 잡종의 영역을 확고히 하지 않는다. 기능적 관점에서 보자면 찢기고 뜯겨지며 결합한 잡종은 식물로써 쓸모를 잃는다. 그 시각으로 본다면 양준식의 잡종은 현존재인 우리에게 어떠한 용도도 남아있지 않다. 무의미해진 잡종은 우리에게 있어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잡종들은 전시장 안에 걸 린 뒤 우리에게 있어 인식의 대상이 되고 예술적 가치라는 특정한 용도를 얻게 되며 이미지로써 우리와 관계를 맺어 인간이 사유하는 현존재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화원과 들판에 자란 수많은 꽃들은 다 같은 꽃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양준식의 키메라는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단 하나뿐인 잡종으로 사진 속에 위치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이데거의 철학에 따라 키메라의 현재는 우리와 같은 생명이라 지칭할 수 없다. 그저 잡종화된 사물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양준식이라는 조물주가 부여한 서로 다른 결 합을통해개성과차별점을얻었다.그리고“그에게서 나를 본”다는작가,사진을바라보는우리가<키메라>와<한 뿌리의 죄인들>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함으로써 이미지는 타자가 되고 관계가 연결되며 현존재로 거듭날 수 있 다. 앞의 두 관점을 통해 양준식의 ‘잡종’은 새로운 용도와 쓸모를 획득한다. 이는 다양한 것이 혼재된 영역, 새로운 자 유로 우리를 이끈다.
 평범한 사물이 아닌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되고 접합된 혼종 형태는 분명히 양준식의 사진 안에서 현존하고 있다.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가상이미지가 아닌 실제로 공간 안에 존재했던 어떤 것의 이미지다. 이 잡종 이미지는 고정관념과편견을부수며작품을마주한우리내부로들어온다.1 나무판자위에못박힌식물을담은<한뿌리의죄 인들>에서는 특정한 종교적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도상을 보여주며, 붉은 실로 꽁꽁 묶인 <키메라> 속 잡종화雜種花 는 기존 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순수성과 전통성을 거부한다. 정통이라는 선로에서 이탈하여 이전과 다른 자유 를 개척한다. 이로써 양준식이 그리는 잡종들은 기존 권력 질서에서의 순수성, 즉 순종과 잡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다. 잡종의 세계에서 잡종화雜種化된 우리의 “초상”을 보여주며 “일종의 헌화를” 하는 셈이다.
                                                                                                                                                                            
1. 피에르 부르디외, 중간예술, 주형일 역, 현실문화연구, 2004,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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